취미학개론에는 매 인터뷰마다 ‘취미의 효능’을 묻는 공통 질문이 있습니다. 스트레스 해소, 자존감 회복, 성취감... 여태껏 다양한 효능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는데요, 오늘의 인터뷰이 민물상어님은 뜻밖의 답변을 내놓습니다. 

 "취미의 효능은 없는 것 같아요. 근데 꼭 있어야 할까요?" 

 자신의 취미가 곧 인생이라고 말하자마자 나온 답변이라 더욱 의외였습니다. 지난 15호에서 보드게임을 하는 로빈님이 보드게임의 효능이란 '재미'라고 말한 것처럼, 민물상어님도 인생의 최우선 가치는 '즐거움'이라고 합니다. 흥미롭게도 민물상어님의 취미도 방탈출인데요. 오늘 레터에서는 '효능 없는 것'에 기꺼이 시간을 쏟으며, 낯선 사람과도 어울려 함께 방탈출을 하는 민물상어님의 이야기를 따라가봅니다.🦈

• 가상 세계로의 몰입, 방탈출

• 공포, 잠입, 유니버스... 다양한 방탈출의 세계
• 공통의 문제를 다 같이 협력해서 해결하는 쾌감
• 너무 좋아하지만 창작은 하고 싶지 않은 이유
• 쓸모 없는 것들로 이루어진 게 인생이다
• 취미란 자본주의의 원리로 굴러가는 이 세계의 '틈'

🦥 방탈출의 매력과 효능은 무엇인가요?

머리 쓰는 류의 게임을 별로 안 좋아하시는 분들이 있잖아요. 근데 요즘은 테마에 좀 더 몰입할 수 있는 장치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가령 배우가 나온다거나, 다양한 장치들이 있다든가. 그래서 살면서 할 수 없는 다양한 체험을 해보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방탈출이 재밌는 경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 재미있는 테마 예시를 좀 들어준다면 뭐가 있을까요?

방탈출이 아무래도 스포일러를 하면 안 되는 특성이 있어서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일단 제 인생 방탈출은 '비공식수사'입니다. 혹시 정종연 PD 아시나요? <대탈출>, <여고추리반>이라는 방탈출 예능을 만드신 분인데, 그분 예능을 제가 좀 많이 보는 편이에요. ‘비공식수사’라는 테마는 <여고추리반>을 직접 하는 느낌이에요. 기본적으로 순경이 돼서 추리를 해야 되는 방탈출 게임인데요. 방탈출 요소가 반이고, 추리 게임 요소가 반이에요. 배우도 꽤 많이 출연해서 용의자를 직접 취조할 수도 있어요.

🦥 약간 참여형 연극 같은 느낌이기도 하겠네요.

맞아요. 근데 나만 즐길 수 있는 거죠. 프라이빗하게. 그리고 또 재미있게 했던 게 '신촌성심병원'인데요. 이것도 배우가 나오는 테마예요. 제가 공포 영화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공포 테마도 많이 해봤는데, 이거는 너무너무 무서워서 기어 다녔어요. (웃음) 

🦥 그런 공포 테마는 사람을 놀래키고 귀신도 나오고 그러나요? 

그 정도가 아니고요. 스포일러라서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는데, 전문 배우가 출연하고, 연기를 매우 잘하십니다. 근데 공포는 정말 사람 구하기가 힘들어요. 한국에는 특히 공포 좋아하는 분들이 워낙 없어서... 영화로 따져도 공포 영화가 잘 안 되는 장르잖아요. 

🦥 저도 생각만 해도 무서워요. (웃음) 민물상어님이 좋아하시는 방탈출은 어떤 거예요?

공포만큼 무서운 게 잠입물이거든요. 잠입물이 진짜 무서워요. 그런 테마들은 누군가에게 들키면 안 되는 상황이 있는 건데, 그것도 대부분 배우, 그러니까 NPC가 있어요. 저는 사실 공포보다 잠입이 더 무섭더라고요.

🦥 입문자들을 위해 추천하고 싶은 테마나, ‘이렇게 하면 조금 더 즐길 수 있다’ 하는 팁이 있을까요? 

🦥 그럼 방탈출을 고를 때는 어떤 기준으로 고르세요? 입소문? 아니면 제작자나 장소를 보시나요?

장소를 보긴 해요. 유명한 방탈출 카페들이 있거든요. 이런 곳들은 어느 정도 퀄리티가 보장돼 있어서, 웬만하면 그런 데를 찾아서 가는 편이고요. 그리고 사실은 별점을 많이 봅니다. (웃음) 

🦥 다 똑같군요. 뭐든 후기 보고 가는 거죠. 혹시 방탈출이 내 실제 삶이랑 연관된 지점도 있을까요? 

일을 할 때 가끔 “이게 방탈출이라면 어떻게 할까?” 이런 생각을 하긴 해요. 내가 방탈출할 때는 참 문제 해결을 잘하는데, 이걸 일에도 적용할 수 없을까? 그런 생각을 종종 하긴 하죠. (웃음) 

🦥 내 현생의 어려운 문제들도 방탈출처럼 보면 조금 더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겠는데요? 

맞아요. 근데 딱히 실효는 없어요. (웃음) 

🦥 혹시 방탈출의 기원을 아세요?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왜 2010년대 후반부터 이렇게 많아졌을까요?

그러게요. 저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는데… 시초는 PC 게임이라고 들었어요. ‘더 룸’이라든가 그런 방탈출 게임들이 예전에 있었잖아요. 아마 그런 게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 생각해보면 방탈출이라는 개념 자체는 영화에도 나왔던 것 같아요. ‘패닉룸’이나 '큐브'처럼... 탈출물이라는 장르가 있잖아요. 그런 거 보면 이 개념은 꽤 오래된 거네요. 다만 실물화돼서 구현된 게 비교적 최근일 뿐이고요. 근데 왜 굳이 갇히고, 탈출해야 한다는 설정을 자처하게 됐을까요? 

근데, 이런 얘기하면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방탈출 이전부터 제가 ‘폐소애호증’이 있다고 말하곤 했어요. ‘갇히고 싶다’라기보다는, 저는 막힌 공간을 좋아하거든요.

🦥 폐소애호증이라니, 그런 건 처음 들어봐요. 설마 그게 방탈출을 좋아하는 이유랑 관련이 있는 정도는 아니겠죠? 알고 보니 ‘탈출’이 아니라 ‘갇힘’이 좋아서 방탈출을 좋아했던 건 아닌가요. (웃음) 다시 생각해보셔야 할 것 같아요.

한 번 자기성찰을 해 보겠습니다. (웃음) 

🦥 민물상어 님이 생각하는 취미란 무엇인가요?

취미가 뭔지 딱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보통은 '일을 제외한 무언가'라고 생각하잖아요. 근데 저는 취미도 저를 형성하는 데 굉장히 큰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뭘 하든 ‘즐거움’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제가 욜로를 지향하는 스타일이에요. 일을 해도 거기서 즐거움을 못 느끼면 금방 시들해지는 편이고요. 

근데 취미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요. (웃음) 방탈출, 보드게임도 좋아하지만 뮤지컬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이런 생각도 들어요. 취미는 박찬욱 영화 <아가씨> 속 대사처럼,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같다.

🦥 완전 공감돼요. 그런 사람들 많죠. 취미 때문에 돈을 버는 경우도 있고. 

맞아요. 저는 수입의 50% 이상은 취미에 쓰는 것 같아요. 콘솔 게임도 하거든요. 닌텐도 스위치,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거요. 

🦥 온갖 게임을 다 하시네요. PC 게임도 하세요?

PC는 잘 안 해요. 온라인 게임은 별로 안 좋아해요. 저는 사람들하고 대면해서 하는 게임을 좋아해서요. 콘솔 게임도 누군가랑 같이 해야 재밌고, 혼자 하는 건 잘 안 해요.

🦥 누군가랑 ‘같이’ 한다는 게 민물상어님한테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네요.

맞아요. 심지어 뮤지컬도 혼자 보기 싫어서, 어머니 티켓도 한 장 더 사서 같이 가요. (웃음) 

🦥 저도 제가 좋아하는 걸 누군가랑 같이 보고, 얘기하고 싶은 그런 욕구가 많아요. 그래서 공연이나 여행도 항상 누군가와 같이 가고 싶어지더라고요. 결국 민물상어님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경험’을 중시하는 사람이군요. 그렇다면 민물상어 님에게 방탈출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음... 글쎄요... 방탈출은... 인생이다? 

🦥 방탈출이 인생이다, 그렇게까지!

네. 저는 취미 없이는 성립이 안 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취미는 저를 형성하는 데 굉장히 큰 부분이고요. 인생이라고 말해도 될 것 같아요. 저는 재밌게 살고 싶거든요. 일만으로 저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다양한 면이 있는 사람이고, 저를 제일 잘 드러내주는 게 취미, 그중에서도 방탈출을 포함한 ‘게임’이라고 생각해요.

🦥 그렇다면 민물상어 님이 생각하는 ‘취미의 효능’은 뭔가요?

취미는 사실 효능이 없다고 생각해요. 근데 꼭 있어야 할까 싶어요. 꼭 모든 것에 효능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효능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게 취미라고 생각해요.

🦥 그러게요. 돈도 안 되고, 오히려 내가 돈 쓰고 시간 쓰고 굳이굳이 하는 거잖아요. 그게 취미의 핵심인 걸지도요.

쓸모없는 것들로 이루어진 게 인생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모든 것에서 의미를 찾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 인터뷰하면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비효율적인 일이 결국 나를 규정하는 것 같아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위해서, 혹은 자아 실현을 위해서, 이런 식으로 목적이 있는 행위는 오히려 나를 설명해 주지 못하는 것 같아요. 아무것도 보상받지 못하고, 아무런 쓸모가 없는데도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결국 '나' 아닌가...

맞아요. 어쩌면 취미가 그 시스템의 틈 같은 걸 수도 있죠. 그러므로 취미학개론도 시스템의 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