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와 경쟁 속에서 살아온 대학생이 북을 치며 '함께 하나가 되는 법'을 배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오늘의 인터뷰이 띵킹님은 학과 선배들에게 정보를 얻으려고 들어간 풍물 동아리에서 2년 넘게 북을 치고 있다고 합니다. 처음엔 장구를 메고 한 바퀴 도는 것조차 낯설었지만, 이제는 수십 명이 함께 뛰며 눈을 마주치고 호흡을 맞출 때 오는 일체감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해요.

 완벽한 연주보다 함께 어울리며 즐기는 마음이 중요한 곳. 자신의 타이틀을 내려놓고 '패명'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곳. 버거운 삶을 환기시켜주는 곳. 띵킹님이 이끄는 풍물의 세계로 함께 들어가 볼까요?

• '띵킹', '마네킹', '드링킹'...? 풍물판 패명의 세계
• 앉아서 치는 사물놀이 vs 뛰고 도는 풍물놀이, 뭐가 다를까?
• 일주일간 갇혀 북만 치는 '전수', 풍물판의 '프로듀스 101'
• 서양 클래식 음악과 풍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 박치도 환영하는 풍물판, 그 이유는?
• 경쟁에서 공존으로—풍물이 바꿔놓은 세계관
• ‘내 세상이 더 넓어질 수 있다’는 걸 안다는 것

🦥 오늘 어떤 취미로 나오셨는지와 함께 간단한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년 넘게 풍물이라는 취미를 하고 있는 '띵킹'이라고 합니다. 풍물을 하는 곳에서는 서로를 ‘패명’으로 부르는데요, 제 패명이 ‘띵킹’이랍니다. 고창 농악을 전수받는 동아리 ‘매호씨’에서 북을 주로 치고 있어요. 

🦥 패명이라는 게 재밌네요. 일종의 활동명이라고 보면 될까요?

네 맞아요. 저희끼리는 ‘부캐'처럼 생각하기도 하고요. 요즘 풍물을 하는 대학생들은 대부분 동아리 단위로 활동을 하는데, 동아리마다 패명을 정하는 문화가 있어요. 저희 동아리는 기수마다 끝자리를 맞추는 ‘돌림자’가 있는데, 저희 기수는 '킹' 돌림자를 써요. 그래서 저는 띵킹이고, 다른 킹들도 있죠. 어떤 동아리는 매해 테마를 정해서 패명을 정하기도 해요. 예를 들어 ‘소리’가 테마면 ‘고요’, ‘잔향’ 같은 이름을 짓는 식이에요. 

🦥 근데 전통적인 이름이 아니라서 띵킹은 좀 의외네요. 

그렇죠. 실제로 ‘백로’ 같은 패명을 가진 분도 있는데, 저희는 조금 세속적인 편이에요. (웃음) 저희 킹들 중엔 마네킹, 세계랭킹, 오키도킹, 젤리킹, 드링킹도 있어요. 

🦥 띵킹이 그중에 제일 무난하네요. (웃음) 혹시 처음 동아리에 갔을 때 기억나시나요?

원래는 그냥 좋은 선배들에게 학과 생활 관련된 정보와 자료를 많이 받으려는 취지로 간 거였거든요. 근데 처음 제대로 풍물을 했을 때에는 많이 놀랐죠. 내가 이런 걸 하려고 동아리에 들어온 게 아닌데. (웃음) 저는 우선 사물놀이를 생각하고 들어간 거였거든요. 사물놀이는 앉아서 하는 거고, 악기 연주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1970년대쯤에 어떤 선생님이 풍물놀이를 앉아서 연주 중심으로 개편한 게 사물놀이라고 하더라고요. 풍물은 지역적인 색채도 가지고 있어요. 그 동네에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던 게 풍물인데, 사물은 좀 더 무대 예술 차원에서 하는 거죠.

풍물을 처음 접한 건 1학년 여름방학에 고창이라는 지역에 가서 전수를 받으러 갔을 때였거든요. 일단 풍물은 ‘연희’라는 말을 써요. 그러니까 무대 예술인 거거든요. 정말 몸과 표정과 음악과 가락과 박자가 하나로 다 합쳐진 연희예요. 저는 제가 장구를 몸에 메고 돌 줄 몰랐어요. 턴을 해야 돼요. 정말 집에 가고 싶었어요. (웃음) 

🦥 시작이 그랬는데 어쩌다 계속 하시게 됐나요? 

전수 가면 일주일 동안 집에 못 가고 고창에 갇혀 있어야 해요. 저는 일단 해야 되면 하거든요. 그래서 했는데, 처음 며칠은 힘들었지만 조금 익숙해지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생기고 나면 ‘판굿’이라는 걸 뛰어요. 거기서 다 같이 풍물을 하는 거예요. 한 60명씩 뛸 때도 있고, 보통 전수관에서는 30명 정도씩 뛰는데, 각자의 악기를 들고 뛰고 돌고 소리를 내면서 그렇게 하나가 되는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눈을 마주치고 서로 호흡을 맞추고 발을 맞췄을 때 오는 그 일체감. 너와 내가 하나가 된 느낌. 그게 좋았던 것 같아요. 

🦥 그런데 전수가 뭔가요? ‘전수 받는다’는 말에서 느낌은 오는데, 일종의 캠프에 가서 배우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농악이 지역별로 발전했기 때문에 그 지역으로 가서 전수를 받는 거예요. '프로듀스 101' 생각하시면 비슷해요. 연습생들이 영어마을 기숙사에서 같이 자고 아침에 눈 뜨자마자 연습하잖아요. 그런 생활을 일주일 정도 합니다. 프로듀스의 선생님들처럼 여기도 ‘사부님’이라는 분들이 계세요. 일종의 수련캠프인 거죠. 연습할 때는 전수생들이랑 같이 동고동락하면서 멍도 많이 들고 마음도 많이 힘들다가, 밤에 숙소동으로 가면 프로듀스 연습생들이 재미있게 노는 것처럼 저희도 술도 먹고 즐거운 시간을 가집니다.

옛날에는 악기를 배우고 새로운 동작을 익히고 나한테 모자란 기술적인 부분을 채우는 게 전수 시간의 대부분이었다면, 점점 익숙해질수록 나의 새로운 모습, 혹은 거기서 어떤 사람들을 만날까 이런 것들에 더 초점이 맞춰지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악기를 바꾸기도 해요. 북을 치다가 소고로 가고, 소고를 마스터했으면 장구도 해보고. 그래서 진짜 평생 해도 콘텐츠가 마르지 않는 취미예요.

🦥 악기를 바꿀 수 있다는 건 의외네요. 

그게 클래식 음악이랑 다른 것 같아요. 바이올린 같은 건 어느 정도 수준에 다다를 때까지 시간이 되게 많이 걸리잖아요. 기본적으로 클래식 음악에서는 악기를 어릴 때부터 배우죠. 영재나 신동, 비르투오소 같은 걸 좋아하고요. 근데 풍물이나 농악은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음악이에요. 모두가 함께할 수 있게 해주는 매체나 중계자 같은 예술이거든요. 무대 위의 예술이 아니라, 마당놀이처럼 함께 어울려서 흥을 나누는 게 풍물이에요. 그래서 악기를 시작하는 것도 쉽고, 악기도 싸요. 그래서 진입장벽이 낮다고 생각합니다.

🦥 그러고 보면 풍물놀이는 주변 사람들의 흥을 같이 끌어올려야 하잖아요. 그런 게 재밌을 것 같아요.

그런 것도 처음에는 사실 힘들어요. 관객분들이 앉아 계시니까, 물론 그 사람들 마음속에 흥이 있지만 그걸 처음에 깨우는 과정이 좀 어렵거든요. 처음에는 약간 억지 텐션 느낌도 나요. 그래도 계속 하다 보면 박수도 치고, ‘얼씨구’도 외치고, 호응이 나올 때가 있어요. 그때 나오는 쾌감이 정말 커요. 그렇게 텐션을 올리고 나서부터는 서로가 같이 에너지를 주고받는 느낌이 와요. 제가 에너지를 주면 관객도 주고.

🦥 이 취미를 만나기 전과 후를 비교했을 때, 나에게 생긴 변화가 있나요?

저는 풍물과 굿 문화에서 공동체 정신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전까지 저는 개인주의적인 삶의 방식을 살아왔고, 나라는 사람이 어떤 타이틀을 가졌으면 좋겠고, 그 타이틀을 갖기 위해서는 경쟁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을 공존할 수 있는 사람이라기보다 경쟁의 대상으로 봤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전수를 하러 고창에 가고, 그 이후에도 같이 굿을 치면서 느낀 건, 그 자리에서는 누가 더 잘났고 이런 게 아니라 ‘어떻게 하나가 잘 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거였어요. ‘내가 지금까지 너무 경쟁주의적이고, 줄 세우는 문화에 익숙해 있었구나. 그렇지 않은 세상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제 대학생이 됐고, 앞으로 살아갈 세계에서는 이런 게 더 중요하겠다는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한 번 세계가 바뀐 것 같아요. 

🦥 팀워크가 강조된 취미 활동이 좋은 면도 있지만, 잘못하면 또 반대로 갈 수도 있잖아요. 오히려 회의적으로 변할 수도 있고요. 

그게 아무래도 아웃풋이 숫자로 나오는 곳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오케스트라도 해봤거든요. 오케스트라는 실수를 하거나 미스터치가 생기거나 음정이 안 맞아서 화음이 깨지면 그게 다 드러나잖아요. 특히 타악기를 했는데, 제가 박자가 빨라지거나 한 번 실수하면 모두가 알아요. 그러다 보니까 그때까지 해왔던 팀워크는 ‘공존’이나 ‘협력’이라기보다, ‘내가 내 1인분을 잘했느냐’가 중심이었어요. 근데 여기서의 팀워크는 성과 중심주의가 아니에요. ‘내가 잘했느냐’보다는, ‘같이 힘을 받아서 재밌게 한번 놀아보자’ 이런 느낌이에요.

🦥 클래식이나 서양 음악 쪽은 정해진 이상향이 있잖아요. 틀이 있고, 규칙도 정확하고. 그 틀에 누가 더 잘 맞춰 들어가느냐의 싸움인데, 풍물놀이는 애초에 목적 자체가 완벽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기원하는 마음을 함께 만들거나 놀자판을 여는 거잖아요. 그 차이에서 오는 자유도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사실 대학생들의 마음이 되게 가난한 시대거든요. 1~2학년 때부터 ‘뭔가를 해야 될 것 같은’ 압박감이 있고, 3~4학년이 되면 ‘내 자리를 어떻게 잡지?’ 하는 고민이 많아요. 그런데 여기는 어느 대학을 다니는지, 뭘 하고 있는지, 뭐가 되고 싶은지 이런 걸 떠나서 잠깐 쉬러 오거나 놀러 오는, 그런 사람들이 모여요. 나이 많으신 분들도 29살, 30살 이런 분들까지 다양하지만, 다들 타이틀을 내려놓고 ‘패명’으로 존재해요. 거기선 그냥 그 이름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거예요. 악기를 치는 순간만은 사회에서 가진 타이틀이나 역할을 다 내려놓을 수 있거든요. ‘나는 북을 치는 사람, 너는 쇠를 치는 사람. 같이 한 번 해보자.’ 그 패명이 주는 해방감이 확실히 있어요.

🦥 이 취미를 통해 띵킹 님이 지켜내고 있는 건 뭔 것 같으세요?

세상을 보는 다른 관점이요. 풍물을 하면서 한 번 제 세상이 넓어져봤잖아요. 그 경험이 되게 소중한 게, 지금도 물론 고등학교 때보다 제 세상은 넓어졌지만, 어딘가에 또 제 바운더리 밖의 풍물 같은 게 있을 거라는 걸 알아요. 어딘가에 내 세상을 더 넓혀주고, 깨게 해주는 게 또 있을 거예요. 그래서 계속 갇히지 않으려고 해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으려고요.

🦥 ‘내 세상이 더 넓어질 수 있다’는 걸 안다는 건 정말 큰 자산이네요. 띵킹님이 정의하는 취미란 무엇인가요?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을 계속하는 것, 그게 취미 같아요. 저는 사랑과 애정을 느끼며 하는 모든 게 취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취미의 정의를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 띵킹님이 생각하는 취미의 효능은 뭐예요?

저를 계속 환기시켜주는 것 같아요. ‘환기’라는 게 말 그대로 창문 여는 그림을 떠올리면 돼요. 방 안에 꿉꿉한 공기가 갇혀 있다가 창문을 싹 열면 새 바람이 들어오잖아요. 그럼 기분이 되게 좋아지죠. 저는 그게 취미의 효능인 것 같아요. 

삶은 버겁다고 생각해요. 근데 버겁지 않으면 또 공허한 것 같아요. 오히려 저는 조금 버거워야 삶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버거운 이유들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럴 때마다 나를 환기시켜주고, 왜 이 버거움을 견뎌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게 취미예요. 그래서 본업에도 도움이 많이 되고요. 취미를 하면 본업을 통해서 ‘어떤 가치와 의미를 나와 세상에 줄까’를 고민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 띵킹님은 풍물을 통해 어떤 삶의 가치를 갖게 됐어요?

저는 사람의 건강을 다루는 일을 하게 될 것 같은데요, 예전 같았으면 ‘그냥 돈 많이 벌자’ 이런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혹은 ‘어떻게 하면 더 과학적으로 디벨롭해서 좋은 약을 만들까’ 이런 식으로 물질적으로만 봤을 것 같은데, 이제는 ‘건강이라는 걸 어떻게 여러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요. 좋은 건 나눠야 된다는 마음, 그 ‘나누는 마음’이 생겼어요.